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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미인들,주세죽..조선시대 미인의 기준..

.ⓒ 2014. 3. 31.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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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미인들,주세죽..조선시대 미인의 기준..


조선시대 미인들이랍니다.

조선시대 미인들의 미의 기준.. 조선시대 미인의 기준은 참으로 단순했던 것 같네요.

조선시대 미인들의 사진을 보면 요즘과는 달리 키가 많이 작다.


조선시대 미인들 조건


조선시대 미인들 조건은 현시대의 미인조건과는 확연한차이를 보이죠

정말 현시대와 조선시대 미의 기준은 다른듯 현재에는 눈도크고 코도오똑 베이비페이스


조선시대에는 쌍커플도없고 이마도넓고~ 위의 사진만봐도 다르다는걸 알 수 있지요조선시대 미인들

조선시대 미인들

조선시대 미인들

조선시대 미인들

조선시대 미인들


조선시대 미인들 조건 10가지

조선시대 한량들은 조선시대 미인들 조건으로 10가지를 점수로 매겼다고 한다.

조선시대 미인의 기준..


1. 살결과 치아와 손은 하얀색이어야 한다.

2. 눈동자와 눈썹 속눈썹은 검은색

3. 목과 머리 팔다리는 길어야함

4. 치아와 귀 발길이는 짧아야함

5. 가슴 이마 미간은 넓어야 함

6. 입 허리 발목은 가늘어야 함

7. 엉덩이 허벅지는 두꺼워야함

8. 손가락 목 콧날은 가늘어야 함

9. 코 머리는 작아야 함








1928년 주세죽은 박헌영과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 도중에 딸 비비안나를 낳았다.

이 비운의 혁명가들을 기리는 노래가 <눈물젖은 두만강>이다.


1901년 함경남도 함흥시 출생

1919년 3.1운동 참여.함흥경찰서에 체포.

1921년 중국 상해에서 박헌영과 결혼

1922년 박헌영과 함께 고려공산청년회,조선공산당 활동.

1928년 밀항선을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탈출

1929년 딸(비비안나)출산.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입학.

1933년 박헌영 재상해 일본영사관에 체포 후 조선으로 압송.

1934년 재혼(김단야)

1937년 스탈린의 대숙청에 의해 김단야 처형

1938년 카자흐스탄으로 유배형.

1953년 모스크바에서 사망.

1991년 딸 비비안나는 아버지의 고향(충남 에산)의 흙을 가져다 어머니 무덤에 뿌렸다.

출처 : http://cafe.daum.net/cheonankypp/6Lv/4536




주세죽(朱世竹, 1901년 6월 2일 ~ 1953년)은 일제 강점기 한국의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 언론인이며 해외에서 활동한 사회주의 운동가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여성 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 조선여성해방동맹 등을 조직, 결성하였으며,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활동하다 투옥당하기도 했다. 한때 신간회와 근우회에도 가입하여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상하이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계속했다. 1928년 출옥한 남편 박헌영과 함께 소비에트 연방으로 정치적 망명을 한 이후로 귀국하지 못하였다.


박헌영의 첫 번째 부인이었으나, 이혼하여 1933년 김단야와 재혼하였다. 다른 이름은 한세죽, 소련에서 사용했던 러시아식 이름은 한 베라이고, 다른 이름은 코레예바(조선 여자라는 뜻)이다. 박헌영 등과 조선공산당 조직에 참여하였고 1928년 소련으로 피신한 후, 소련에서 생활하다 1938년 5년간 유형당하였다. 사후 러시아에서 복권되었으며, 대한민국에서도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아 2007년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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